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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원두값 내렸는데… 커피믹스값 뜀박질?

원두값 내렸는데… 커피믹스값 뜀박질?
‘식지 않는 독과점’… 가격만 펄펄 끓는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5-12 11:52
‘정말 원두 가격이 오른 이유만으로 커피믹스 가격이 오르나.’ 동서식품은 지난 4월25일 커피믹스 가격을 9.8% 인상하면서 국제 원두 가격 폭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최근 국제 원두 가격이 1년 전보다 2배 수준으로 올라 커피믹스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 4월 원두(로부스타 품종 기준·전세계 원두 생산량 30~40% 차지) 국제시세는 1t당 2473달러로, 3년여 전인 2008년 8월(2275달러)과 비교하면 8.8% 올랐다.

같은 기간 동서식품은 2009년 7월 5%, 올 4월 9.8% 커피믹스 가격을 연거푸 올렸다. 더욱이 2009년 7월은 국제 원두 시세가 1t당 1460달러로 11개월 전에 비해 35.8%나 떨어진 시점이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2.8%)이나 환율 변동을 감안해도 원두 시세가 큰 폭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가격을 5%나 인상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유통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동서 측은 아라비카 품종의 원두 가격은 수년 동안 큰 폭으로 올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련업계는 커피믹스에 널리 쓰이는 품종이 로부스타인데다, 아라비카 원두 국제 시세 역시 2009년 7월 가격 인상 당시 2008년 8월 대비 10.7% 떨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르기만 하는 커피믹스 가격, 왜? =“커피믹스 가격은 떨어질 줄은 모른다”는 얘기는 유통업계에서는 공공연한 얘기다. 국제 원두시세나 환율 변동보다 시장 가격을 결정 짓는 더 강력한 요인이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그 요인으로 오랜 동안 형성된 커피믹스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꼽는다.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이 1975년 이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탄생했다. 그 이후로 커피믹스 시장은 현재 연간 1조원대 규모로, 대형마트 판매액 1위 자리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해 왔다. 하지만 경쟁구도는 동서식품과 스위스 네슬레의 한국법인인 한국네슬레가 8대 2가량으로 분할하는 독과점 체제가 굳어진 양상이다.

시장조사기관인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커피믹스 시장 규모는 1조1694억원으로 동서식품과 네슬레는 각각 9577억원, 1812억원 어치를 판매해 82.2%와 15.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난해 12월 광업·제조업 분야의 시장구조 조사 결과, 커피믹스 시장은 독과점 고착화로 시장지배력 남용 가능성이 큰 업종으로 꼽혔다. 공정위 측은 “기존 기업의 시장지배력 행사 가능성이 커 신규 기업의 진입이 어려운 시장”이라며 “영업이익률은 높으면서도 연구·개발(R&D) 비중은 적고 해외 개방도는 낮은 데다, 내수 집중도는 높다”고 진단했다.

◆10년간 배당금 9300억원 = 동서식품이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이 회사가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동안 지급한 배당금은 9300억원가량. 이 기간 거둬들인 영업이익 총 1조4700여원 중 60% 안팎을 배당금으로 사용했다는 얘기다.

지난해만 해도 영업이익 2200여억원 중 1100여억원이 배당금으로 나갔다. 식품업계 중 거의 유일하게 15%가량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조치다. 동서식품은 ㈜동서와 미국 크래프트푸드가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절반은 ㈜동서로, 절반은 세계 최대 과자 회사인 크래프트푸드로 흘러간다. 이처럼 동서식품을 통해 시장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검증되자, 후발주자들도 속속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대상, 한국야쿠르트 등도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 도마 오를 듯 = 강한 디펜스 전략을 펴는 동서식품 등 선발업체들과,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총력을 쏟는 남양유업 등 후발주자들 간의 마찰이 격해지면서 관련 시장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이미 동서식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남양유업의 프렌치 카페믹스 제품 광고 중 ‘프림 속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문구가 자사 제품을 비방했다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다. 카제인나트륨이 함유된 자사 제품이 나쁜 것처럼 소비자에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

반면, 남양유업은 조만간 공정위에 선발업체의 시장진입을 봉쇄하는 불공정 행위를 제소할 방침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올초부터 경쟁사 대리점장이 매대에서 남양 제품을 철수시키면 매달 수십만원의 판매장려금을 지급하고 각종 행사도 지원하겠다는 의뢰를 했다는 중소마트 운영자들의 확인서를 속속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남양유업 고위임원은 최근 영업조직에 “경쟁사의 불공정한 행위와 영업방해 활동을 발견하면 즉시 본사로 보고하라”고 내부에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독과점 상태에 있던 커피믹스 시장이 본격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향후 커피믹스 시장과 가격 향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