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D 시장 변화의 큰 변곡점은 2년 안에 올 것 같다”
HDD 사업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기간을 두고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지난 4월19일, 삼성전자는 HDD 사업부를 정리했다. 전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저장매체 업체 씨게이트에 삼성전자의 HDD 사업부를 매각했다. 씨게이트가 삼성전자 HDD 사업부를 인수한 총 금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1조 5천억원 규모다. 이로써 1989년부터 20여 년간 생산해오던 삼성전자 HDD를 볼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로서는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HDD 사업부를 씨게이트에 넘겨주면서 1조 5천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7천500억 정도를 현금이 아닌 씨게이트 주식으로 받았다. 주식 보유량으로는 2대 대주주가 됐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재무적 투자자를 제외하면 최대 주주가 됐다.
씨게이트와의 폭넓은 전략적 제휴도 삼성전자가 얻어간 이익이다. 삼성전자는 씨게이트가 생산하는 SSD 제품에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의 효자 사업부인 메모리 부분의 시장 점유율 확대가 기대된다.
△ 2010년 3분기 전 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점유율 (출처 : iSuppli)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의 자료를 보면 2010년 3분기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33.8%로 1위를 차지했다. 28.5%를 기록한 도시바에 약 5% 차이를 보이며 근소한 차이로 1위 자리를 지킨 셈이다.
씨게이트가 생산하는 SSD에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공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2위 도시바와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양사 간 특허 라이선스를 확대했다는 점과 기업용 스토리지 솔루션 개발 협력도 삼성전자의 이득을 셈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권오현 사장은 “양사 간 포괄적 협력은 시장 및 고객들에게 더욱 큰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씨게이트와 협력을 확대해 소비자, 비즈니스 및 산업용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시장을 위한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씨게이트도 삼성전자의 HDD 사업부를 인수하며 배를 불릴 수 있게 됐다. 씨게이트는 지난 3월, 웨스턴디지털이 히타치 GST를 인수하는 것을 발만 동동 구르며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10년 4분기 기준으로 웨스턴디지털은 31%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히타치 GST는 당시 18% 시장을 차지해 시장점유율 5위 업체였다. 웨스턴디지털이 히타치 GST를 인수함에 따라 산술적 계산으로 시장 점유율이 49%에 육박하게 됐기 때문이다. 2위 기업인 씨게이트는 30%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히타치 GST를 인수하기 전 웨스턴디지털에 불과 1%에서 2% 차이로 근소하게 뒤쫓고 있었다.
△ 2010년 4분기 전 세계 HDD 시장 점유율 (출처 : iSuppli)
씨게이트는 삼성전자의 HDD 사업부를 인수해 이 차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씨게이트는 앞으로 삼성전자가 출시하는 데스크톱 PC와 노트북 제품에 씨게이트 HDD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던 시장 점유율 10%의 대부분은 삼성전자가 출시하는 PC 제품군에 들어가는 HDD에서 나온다. 씨게이트가 이 10% 시장 점유율을 고스란히 끌어올 수 있게 된 셈이다. 1위 웨스턴디지털과의 시장점유율 차이도 다시 한자릿수로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저장매체 시장에서 거대한 업체들의 인수 합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1위 업체 웨스턴디지털이 3위 업체 히타치 GST를 인수해 시장의 절반가량을 가져갔다. 그리고 어제는 2위 씨게이트가 5위 삼성전자 HDD 사업부를 인수했다. 저장매체 시장 판도가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낸드플래시메모리 수요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가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1분기 전 세계 HDD 출하량이 2010년 4분기보다 4%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HDD 시장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 SSD 시장 성장 전망 (출처 : iSuppli)
HDD 수요는 감소하고,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수요는 증가했다. 아이서플라이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아이서플라이는 2010년 23억 달러 규모를 보이던 낸드플래시 메모리시장 규모가 2011년엔 44억 달려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돈으로 4조 4천억원에 해당한다. 성장 폭이 90% 이상인 셈이다.
HDD가 직면한 기술적 한계도 HDD 시장이 어려움에 처한 중요한 이유로 손꼽힌다. HDD는 PC 부품 중 유일한 물리적 장치다. CPU, 램, 등 모든 부품이 논리회로의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 데 반해, HDD만이 아직도 플래터라는 회전판으로부터 정보를 읽는다. 이 회전판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도느냐가 HDD의 읽기·쓰기 성능을 가른다. 하지만 HDD 플래터 회전 속도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DD 분당회전수(rpm)는 현재 1만 5천 정도다”라며 “이 기술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HDD 업계는 HDD의 회전 속도를 5400rpm에서 7200rpm으로, 다시 1만rpm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업용으로 공급하는 HDD 중엔 1만 5천rpm을 지원하는 HDD 제품도 있지만 이는 개인용 PC에는 쓰일 수 없다. 소음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소음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플래터가 회전할 때 발생하는 열 문제다. HDD 발열 문제는 노트북 등 소형 PC에 고회전 HDD가 탑재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로 지적된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도 HDD 산업을 힘에 부치게 한다. 인텔은 지난 4월15일 20나노 공정 플래시메모리 생산설비를 공개했다. 기존 25나노 공정의 플래시메모리보다 30%에서 40%가량 기판 크기를 줄이는 동시에 저장용량은 50%가량 늘일 수 있게 됐다. 같은 면적에 두 배 가까이 더 많은 용량을 얹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20나노 공정에서 생산한 플래시메모리가 양산체제에 들어가면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용량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격경쟁력과 용량 효율을 동시에 발전시키고 있는 SSD 산업에 밀려 HDD는 설 자리를 잃어가는 셈이다.
HDD는 고회전, 저 발열 기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밀한 기술이 집약된 부품이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장치인 것과는 별개로 HDD는 매우 싼 값에 팔리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HDD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산업분야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HDD 시장은 양강체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지금까지 HDD 업계는 적자를 면하는 게 목표였다”라고 털어놨다.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수요의 급증, SSD의 수요, HDD의 기술적 한계와 HDD 시장의 과포화 문제까지. 업계 전반에 걸쳐 얼어나는 시장 변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HDD의 퇴행을 부추기고 있다. 더는 수익을 바랄 수 없는 사업부를 정리한 삼성전자와 HDD 사업부에서 2강으로 군림하게 된 씨게이트 모두 원하는 것을 얻었다. 2강 체제로 재편된 HDD 시장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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