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선 당고개역에서 과천안산선 오이도역까지 가는 열차의 차장을 맡은 이준형씨. 올해 21세로 철도대학 2학년인 그는 철도공사 노조가 26일부터 파업을 벌이자 대체인력으로 투입됐다. 철도운전기전과에 다니는 그는 같은 과 2, 3학년 재학생 53명과 함께 전주에서 이틀간 교육을 받은 후 파업 첫날부터 서울지하철 4호선과 연결된 과천안산선의 전동차 차장으로 나흘째 비상 근무 중이다.
앞서 기관사가 있었던 운전실로 들어간 이씨는 먼저 계기판을 살폈다. 전동차의 진행 방향이 반대로 바뀌면서 기관사와 차장의 위치도 바뀌었다. 전동차 뒤쪽 운전실에 자리잡은 차장은 전동차를 운행하기 전 객실등, 열차 무전, 후부표시등이 제대로 켜져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 계기판을 확인한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열차 오이도 방면으로 가는 열차입니다. 열차 잠시 후에 발차하겠습니다”
운전실 출입문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역구내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던 그는 “출입문을 닫겠습니다, 안전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오후 7시 21분 전동차가 당고개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예정된 시각보다 10분 이상 늦게 출발했다. 파업 이틀째인 지난 27일에는 코레일 1호선 구로역에서 대체 투입된 기관사의 미숙으로 선로전환기가 고장 나 전동차가 운행이 최대 1시간 지연됐다. 대체인력 투입 나흘째인 29일 오전에는 이곳 과천·안산선에서도 비슷한 사고 일어났다.
“이번 역은 상계역입니다”
전동차가 역 구내에 정차하면 차장의 움직임은 빨라진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그는 열쇠가 꼽힌 박스에 있는 노란색 버튼을 눌러 출입문을 열었다. 승객이 내리고 탄 후 역구내에 설치된 스크린을 쳐다보며 “출입문을 닫겠습니다, 안전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안내방송을 한 그는 이번에 녹색 버튼을 눌렀다. 출입문이 제대로 닫혔는지를 확인한 그는 박스 위에 있는 하얀색 버튼을 눌렀다. '붕'하는 소리가 울리자 전동차는 다시 움직였다.
이렇게 전동차가 역에 설 때마다 노란색, 녹색, 하얀색 순으로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마치 기계적인 반복 동작 같았지만 이씨는 “이 순간에는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전동차가 미아삼거리역을 출발하자 그는 다시 바빠졌다. 다음 성신여대입구역부터 승객이 타고 내리는 출입문 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바뀌기 때문이다. 박스에 끼어진 열쇠를 빼 반대편 쪽 박스에 꼽은 그는 안내방송 후 차례로 버튼을 눌러 승객이 안전하게 타고 내리게 했다. 다음 한성대입구역에서는 다시 반대 방향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번 파업 기간 중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차장이 실수를 해 반대편 출입문을 연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실수는 차장들 사이에서 “김밥 터졌다”고 한다.
전동차 운행을 위해 차장이 사전에 필수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일이 있다. 역마다 다른 구내 상황을 숙지해야 한다. 환승하는 역에서는 어느쪽 출입문으로 승객이 많이 타는 지도 알아야 한다. 또 출입문을 닫을 때 '단호하게 자르는 것'도 중요하다. 전동차를 타기 위해 달려오는 승객 모두를 배려하다 보면 운행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당고개를 출발한 전동차는 1시간여가 지난 8시 24분께 남태령역을 출발했다. 여기서부터 서울지하철 4호선은 국철 구간으로 바뀐다. 전동차가 달리는 방향도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바뀌고 전류도 직류에서 교류도 전환된다. 관제실도 바뀌기 때문에 무전 채널도 철도공사 쪽으로 돌려야 한다. 과천·안산선 선바위역부터 안양시 범계역까지는 비교적 수월한 구간이다. 하지만 이씨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우리 열차 1호선 환승 접속을 위해 잠시 더 정차하겠습니다"
밤 9시 10분. 오이도행 전동차는 안산역에 도착했다. 노란색 버튼을 눌러 승객 출입문을 연 이씨는 자신도 운전실 문을 열고 나왔다. 차장 교대다.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여성 차장이 운전실로 들어갔다. 전동차가 출발하자 운전실 차장에게 손인사를 한 이씨는 플랫폼을 빠져나와 안산역에 있는 안산승무사업소로 들어갔다. 하루 운행 기록을 제출한 그는 비로소 퇴근할 수 있었다. 밤 9시 14분이었다.
철도대학 재학생으로 철도파업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이준형씨는 이날 오전 6시 30분 서울 반포동 집을 나와 오전 8시 안산역에 도착했다. 운행 계획과 주의 사항을 들은 그는 오전 8시 54분 안산역에서 오이도역으로 가는 전동차를 탔다. 9시 11분 오이도역을 출발한 그는 오전 11시 무렵 당고개역에 도착해 창동기지로 들어갔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낮 12시 40분 무렵 당고개역을 출발해 안산역으로 갔다 오후 3시 40분 안산역을 출발한 전동차를 타고 당고개역으로 온 그는 다시 창동기지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오후 7시 21분 당고개역을 출발한 전동차 차장을 맡은 그는 이날 밤 9시 14분이 됐어야 하루 일과를 마쳤다. 안산역 사무소로 출근한 지 13시간, 첫 전동차를 탄 지 12시간이 넘었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나흘간 이렇게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를 했다. 파업 5일째인 30일에는 오전 10시까지 출근해 12시간을 근무했다. 이날 근무를 마친 그는 서울 집으로 가지 못하고 안산승무사무소에서 잤다. 12월 첫날 첫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철도파업이 그 전에 끝날 수 있을까. 숙소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노태운 기자
남 일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