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잡스·슈밋 … ‘절친’이 원수로 [중앙일보]

재미있게살자 2010. 3. 16. 09:45
 

잡스·슈밋 … ‘절친’이 원수로 [중앙일보]

2010.03.16 02:52 입력 / 2010.03.16 04:16 수정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왼쪽 사진)가 아이폰을 처음 선보인 무대엔 구글 CEO 에릭 슈밋(오른쪽)도 참석했다. 1955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친분을 과시했다. 심지어 애플과 구글을 ‘애플구(AppleGoo)’라고 줄여 부를 정도였다.

2001년 벤처기업에서 구글로 합류한 슈밋에게 잡스는 우상이었다. 슈밋은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수시로 잡스 사무실로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슈밋으로선 구글 검색 엔진과 지도 서비스를 아이팟·아이폰의 기본 사양으로 넣어준 잡스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잡스와 슈밋의 밀월은 마이크로소프트(MS)란 공룡을 상대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런데 슈밋은 이때부터 딴마음을 먹고 있었다.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이기 2년 전부터 안드로이드라는 휴대전화용 운영체제(OS)를 비밀리에 개발해왔다. 구글이 검색 엔진에만 머무르지 않고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뒤늦게 이를 눈치챈 잡스는 우려의 메시지를 슈밋에게 전했다. 애초 슈밋도 잡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잡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만 휴대전화 제조회사 HTC가 안드로이드를 탑재해 내놓은 휴대전화가 아이폰을 쏙 빼닮은 것이다. 터치스크린 방식은 물론 사용자 환경도 아이폰과 흡사했다. 잡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는 “우리는 검색엔진 시장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구글은 아이폰을 죽이러 왔다”고 분개했다. 그는 “경쟁사가 우리의 특허기술을 훔쳐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HTC를 특허 침해 혐의로 고발했다.

잡스와 슈밋의 감정 싸움은 지난해 인수합병(M&A)을 통해 한층 격화됐다. 구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판단한 잡스는 지난해 가을 6억 달러를 들여 떠오르는 온라인 광고회사 애드맙 인수에 나섰다. 구글의 사업영역인 온라인 광고에 뛰어들겠다는 의도였다. 다급해진 구글은 애플이 방심한 틈을 타 애드맙을 7억5000만 달러에 인수해버렸다. 그러자 애플은 애드맙의 경쟁사 콰트로 인수로 응수했다.

슈밋이 잡스와 불화를 무릅쓰면서까지 애플을 자극하고 있는 건 철학과 배경의 차이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잡스는 완벽주의자다. 하드웨어에서 OS는 물론 애플리케이션까지 애플의 통제 하에 둬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슈밋은 공개주의자다. 안드로이드도 여러 휴대전화 회사가 쓸 수 있도록 공개했다. 구글에 합류하기 전에도 그는 OS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자바’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와 MS 윈도에 대항한 공개 OS인 리눅스 개발에 매달렸다.

이런 슈밋의 철학이 잡스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학을 중퇴한 잡스와 달리 슈밋은 서부 명문 버클리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잡스의 간섭과 압력이 슈밋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거란 시각도 있다.

아직은 애플과 구글이 막장까지는 가지 않았다. 아이팟·아이폰은 여전히 구글 애플리케이션을 기본 사양으로 쓰고 있다. 업계에선 아이패드를 선보인 애플이 기본 사양을 구글 대신 MS 검색엔진 ‘빙(bing)’으로 바꿀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곧 MS에 대항한 애플-구글 동맹의 파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정경민 기자 [jkm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