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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30년 소주만 마신 영업맨, 맥주 마시며 하는말이

재미있게살자 2012. 6. 24. 15:56

30년 소주만 마신 영업맨, 맥주 마시며 하는말이
학력 낮다고 포장은 안돼…있는그대로 보여줄때 영업선 더 먹혀
기사입력 2012.06.22 15:33:26 | 최종수정 2012.06.24 14: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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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수 오비맥주 대표가 22일 서울 강남역 인근 오비맥주 사무실에서 경영철학과 인생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 1980년 5월. 26세 청년 장인수는 서울 서초구 진로 사옥에 서 있었다. 80명의 동기와 함께 진로 공채 영업사원 입사를 위해서였다. 동기들 중에서 그처럼 고졸 출신은 12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대졸 이상이었다. 당시에도 주류회사 영업사원은 보수ㆍ안정성 등이 높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제지 회사에서 `역동적인 영업직을 꼭 해보고 싶다`며 자리를 옮겨온 180㎝ 거구의 청년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32년이 흐른 지난 20일 오전 11시. 오비맥주의 팀장급 이상 간부에게 예정에 없던 콘퍼런스콜(전화회의) 소집령이 떨어졌다. 최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의 이사회가 끝난 직후였다. 장인수 영업총괄 부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이날로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는 얘기였다. 장 대표가 `고졸 신화`의 완결판을 써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이날 언론들이 이 사연을 대서특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담담했다. 그는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걱정이 많다"며 "여기까지 온 것도 참 운이 좋았는데 아직 운이 더 남은 듯하다"고 짤막하게 소감을 밝혔다.

◆ `한번 더` 정신이 성공비결

사람들은 그를 `입지전적 인물`이라 일컫는다. 학력을 따지는 한국 풍토에서 실력으로 `학력은 이력서를 채우는 데만 필요한 스펙`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쏟은 그의 열정과 정성을 모르기 때문에 쉽게 하는 말이다. 장 대표 역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더`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사, 석ㆍ박사 동기들과 경쟁하기 위해 그들보다 한발 더 뛰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저는 남보다 모자란 게 많은 고졸 출신이라 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선 `더`가 더 필요했죠. 그만큼 더 긴장하고 더 노력하면서 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실제로 장 대표의 부지런함은 주류업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영업사원 시절 동료와 선배들이 5~6개 라인을 담당할 때 19개 라인을 맡아 4년 동안 매일 포니 자동차로 200㎞ 이상을 달렸다. 남들이 가기 싫어했던 거래처(예를 들면 정치깡패 유지광이 운영하던 주류 도매상)도 자진해서 맡았다. 진로에서 영업부장이 된 지 10개월 만에, 동기 중에서 가장 빨리 임원을 단 것도 그가 현장에서 정직하게 흘린 땀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는 또 하나 성공의 비결로 `낮춤의 정신`을 꼽았다. 어느 지위에 있든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는 "요즘도 매달 1일 영업직원들에게 격려 이메일을 보내고, 주류 도매업체 대표 1400명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며 "후배들에게도 이런 마음가짐을 잊지 말라고 항상 조언한다"고 밝혔다.

"영업은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 심지어 `고객졸도`까지 나올 때 성공할 수 있는 거예요. 대보름에 원로 도매상 사장님을 모시고 오곡밥을 지어 갖다 드렸더니 별거 아닌데도 감동하더라고요.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가슴으로 다가갈 때 성공은 따라오는 겁니다."

◆ 철저히 현장 중심으로 생각해야

이런 이유 때문일까. 장 대표의 경영철학은 `하나도 현장, 둘도 현장`이다. 자신 역시 절대로 2선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는 "영업직원을 만날 때마다 `이스라엘 장교`가 되겠다고 말한다"며 "이스라엘 장교는 `나를 따르라`고 외치지만, 다른 나라 군대는 `돌격 앞으로`를 외쳐 사병의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두에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2년 전 오비맥주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도 현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오비맥주는 1차 영업(도매상)에만 치중하고, 2차 거래처(업소ㆍ소매점)에 대한 영업이 소홀하더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영업사원이 직접 담당지역의 밑바닥부터 훑도록 만들었고, 영업총괄 부사장이었던 본인 스스로도 강남역ㆍ홍대ㆍ신천역ㆍ노원역 같은 주요 상권을 돌았다.

그는 또 영업조직 회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현장을 누비는 지점장들의 시간을 뺏지 않기 위해서다. 장 대표는 "1년에 자동차 주행거리가 7만㎞가 넘고, 비행기ㆍKTX 등까지 합치면 20만㎞가 넘을 것"이라며 "회의할 안건이 있으면 내가 직접 돌아다니는 게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직을 맡았지만 현장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영업총괄 직함은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대표는 회식 때 모든 직원에게 영어를 쓰면 벌주 한 잔씩을 마시게 한다. 거래하는 도소매상, 업주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못 쓰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동안 오비맥주 직원들은 `유흥업소`를 `BNO(Big Night Out)`, `가정 소비자`를 `OTM(Off Trade Market)`으로 부르는 식으로 영어 약자를 쓰며 일했다. 그는 "영업사원이 습관처럼 쓰는 영어 단어를 도매상 사장들은 이해를 못한다"며 "거래처와 말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진솔한 영업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비맥주로 자리를 옮길 때 주주와 당시 사장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어요. 첫째는 영어 안 한다, 둘째는 회의 안 한다, 셋째는 믿음을 달라는 것이었죠. 돌아보면 그때 주주들이 제 요구를 들어준 게 참 감사한 일입니다."

◆ 맥주는 소주와 달라…신선도가 중요

그는 30년 동안 소주 영업만 하다가 오비맥주 영업총괄로 자리를 바꾸며 맥주로 `주종(酒種)`을 변경했다. 대표적인 술 두 종류를 모두 취급한 셈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술이니 영업이나 관리나 다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얘기했다가 "절대 아니다"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장 대표는 "소주와 맥주는 근본적으로 접근방법이 달라야 한다"며 "소주 같은 고도주는 오래 보관하다 먹어도 맛에 차이가 없지만 맥주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맛이 떨어지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제일 맛있는 맥주가 공장에서 바로 나온 맥주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거예요. 그만큼 맥주의 맛은 신선도가 좌우합니다."

장 대표는 회사를 옮기자마자 제품 유통 방식을 뜯어고쳤다. 영업사원들이 월말마다 도매상 창고에 술을 쌓아두는 `밀어내기`식 영업을 금지해 맥주 재고량을 대대적으로 줄였던 것. 밀어내기는 월간 실적을 내기 위한 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도매상에 맥주가 쌓이는 바람에 소비자는 출고된 지 한참 지난 맥주를 먹어야 했다. 그는 "제품의 유통 사이클이 짧아지면 소비자가 더 맛있는 맥주를 먹게 되고, 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오비맥주에 온 직후엔 실적이 좋지 않았다. 2010년 1월 출고량 기준 점유율은 한 달 전보다 5%포인트 떨어졌다. 그러나 2010년 하반기부터 오비맥주는 상승세를 탔고, 지난해 15년 만에 하이트진로를 제치고 결국 1위가 됐다.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조사한 올 1분기 시장점유율은 오비맥주가 53.8%, 하이트진로가 46.2%. 지금도 업계에선 오비맥주의 선두 탈환에 `장 대표의 영업전략이 큰 몫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 학력 신경쓰지 말고 그대로를 보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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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표라고 맨날 기쁜 일, 승승장구만 계속했으리란 법은 없다. 예상하겠지만 `학력의 벽`은 그에게도 꽤 높았다. 진로에 입사할 때엔 정부에서 학력철폐를 유도하던 시기여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이후 승진과 급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직장생활은 한순간에 모든 게 결정되는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자위했지만 견디기가 쉽진 않았다. 한때는 고졸 학력이 부끄러운 나머지 숨기고 싶던 적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가족관계 조사서를 써오라고 하면 주눅들지 말라고 `대졸`을 쓰기도 했다"며 "왜 학교나 회사에서 이런 서류에 부모의 학력까지 적게 만드나 원망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학벌문화를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할 필요는 있어요. 누가 얼마나 공부를 했는가를 따져보는 식의 입사시험도 잘못됐다고 봅니다. 회사 생활에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잖아요. 자신의 업무에 맞는 능력과 적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따지는 게 더 중요하죠."

하지만 그는 "학력의 벽에 막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얘기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력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는 얘기였다. 장 대표는 "영업을 할 땐 좋은 대학 나온 사람보다 이득이 되는 면도 있었다"며 "상대방에게 고졸이라고 하면 거리감 없이 쉽게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나를 솔직하게 오픈하면 마음의 벽이 사라지고, 오히려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죠. 그게 제 성공의 비결이었고요. 지금도 젊은 직원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합니다. 자신을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라고."

◆ 옛 맥주명가 오비(OB) 재건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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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선임이 결정되던 날, 장 대표는 "점유율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고객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신 따로 취임식 없이 이런 메시지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현장 본위`인 장인수 스타일이다.

하지만 `숫자에 목매지 않겠다`는 그의 일성은 사실이었다. 장 대표는 "옛 맥주명가 오비맥주를 재건하는 게 목표"라며 "순위와 수치는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신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는 회사, 고객들이 사랑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요즘 우리 직원들의 눈빛만 봐도 자신감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상대사를 의식하지 않고 저희 가던 길을 초지일관 뚜벅뚜벅 갈 거예요.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지 말자, 더 겸손하자, 방심하지 말자고 직원들을 늘 독려하고 있어요."

장 대표는 일단 이호림 전임 대표가 펼치던 마케팅 전략을 지킬 생각이다. 카스와 OB골든라거는 대중 맥주 시장을 공략하고,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등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으로 업계 1위에 오른 기세를 이어가겠다는 것. 그는 "하루아침에 판도가 바뀔 수 있는 국내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안심하진 않는다"며 "앞으로는 공고한 브랜드 성장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 대표는 이어 "영업 측면에선 각 지역에 맞춘 `특화영업`을 내세울 생각"이라며 "상대적으로 수도권보다 열세인 경남ㆍ전남 지역 시장 장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 He is…

장인수 오비맥주 대표이사 △1955년 전남 순천 출생 △1973년 대경상업고등학교 졸업 △1976년 삼풍제지주식회사 경리부 입사 △1980년 진로 입사 △1999년 진로 서울권역담당 이사 △2003년 진로 서울권역담당 상무이사 △2007~2009년 하이트주조ㆍ주정 대표이사 △2010년 오비맥주 영업총괄 부사장 △2012년 6월~ 오비맥주 대표이사 사장

[손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