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 시론] 애플-삼성의 `틀짓기 효과`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1-10-16 20:15
[2011년 10월 17일자 23면 기사]
지난 몇 년간 필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고 있다. 당신이 치명적인 유행병이 도는 한 마을에 파견된 책임자라고 하자. 병에 대처하기 위해 만약 A방법을 선택하면 600명의 주민들 중 400명이 죽을 것이다. 반면, B방법을 쓰면 3분의 1의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되지만, 3분의 2의 확률로 전부 죽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70%의 학생들은 자신은 B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같은 마을에서 이번에는 C방법을 선택하면 200명을 살릴 수 있고, D방법을 선택하면 3분의 1의 확률로 모두 살리든지, 아니면 3분의 2의 확률로 아무도 살릴 수 없다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C와 D를 대답한 학생이 대체로 반반이지만, C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조금 더 많았다. 지난 3년 동안 이 실험 결과는 거의 똑같았으며, 동일한 내용의 실험에 참여한 전 세계 5000여 명의 대학생들 역시 거의 같은 비율로 대답하였다.
잘 생각해 보면 A와 C, B와 D는 표현방식만 조금 다를 뿐 완전히 똑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연이어서 질문을 했음에도 선택의 결과는 이처럼 다르게 나타난다. 이 실험은 사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네만과 트버스키가 수행한 것과 동일하다(참고로 이들의 실험결과에서는 대답 비율의 차이가 더 심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틀 안에서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현상을 `틀짓기 효과'(framing effect)라고 부른다. 심리학은 물론 경영학이나 행동 경제학 분야에서도 널리 응용되고 있는 현상이다. 한편, 실험결과는 사람들이 이득으로부터 얻는 기쁨보다 손실로 인한 좌절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도 부정적인 틀(A와 B)에서 제시되었을 때는 손실을 막기 위해 위험도 무릅쓰려는 태도를 보이지만, 긍정적인 틀(C와 D)에서는 좀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손안의 이익을 놓고 도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짓기 효과나 손실에 대한 거부반응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된다. 많은 기업들은 자신의 상품은 긍정적인 틀에, 경쟁기업의 상품은 부정적인 틀에 넣어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애플이 삼성에 디자인 특허소송을 건 것은 실제 소송에서 승리보다는 애플의 창조자 이미지와 삼성의 복제자 이미지를 틀로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크다. 명품기업들은 일부러 팔리지도 않는 초고가 상품을 내놓거나 상점 앞에 줄을 서도록 함으로써 틀이 다르다는 것을 소비자에 인식시키고, 결과적으로 높은 가격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다. 한편, 손실에 대한 내용을 전달해야 할 경우에는 가급적 부정적 틀은 피하고자 한다. 실제로 최근 필자가 겪었던 사고의 보험 담당자는 자동차 보험료의 할증은 없을 거라고 안심을 시키고 나서는 통화가 끝날 무렵 다만 그 동안 받아 온 할인은 더 이상 받기 힘들 거라고 말하였다. 손실에 대한 거부감은 주식시장에서 이익이 날 때는 쉽게 팔면서 주가가 하락하면 손절매를 하지 못하는 심리에서도 나타난다. 요행에 가까운 재상승을 기대하면서 추가하락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틀짓기 효과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정치나 미디어의 세계에서 특히 맹위를 떨친다.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서울시는 지난 주민투표에서 돈을 더 내야 하는 안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유상급식' 대신에 `단계적 무상급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얼마 전 논란 끝에 전격 은퇴한 강호동은 실제로 탈세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탈세'의 제목을 달고 쏟아지는 보도들 가운데 이미 그를 둘러 싼 틀은 굳어져버렸다. 그로서는 갑작스럽게 스크린을 떠남으로써 시청자들의 손실감을 급상승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방안이었을 지 모른다.
더블딥의 불안감을 안고 있는 증시는 폭락과 반등을 번갈아 하고 있고,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판에서는 상대 후보 흠집 내기 경쟁이 한창이다. 이럴 때일수록 만연한 부정적 틀로 인해 왜곡된 판단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 지 되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