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사]인생에 기권패는 없다

일반“인생에 기권패는 없다”

정환보·이재덕 기자 botox@kyunghyang.com

ㆍ대학시절 권투선수 활약 주부 나황영씨 사시 합격

“인생에 기권패는 없습니다. 맞아서 쓰러질지언정 수건은 던지지 않을 겁니다.”

  지난 22일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707명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주부 나황영씨(28·사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씨는 아마추어 복싱선수 출신이다. 대학 시절 ‘서울대 여대생 복서’로 스포츠신문 지면에 간간이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배에서 동메달을 딴 뒤 2006년부터 사법시험 준비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곤 5년 만에 결실을 봤다. 링에서 내려온 뒤 함께 사시를 준비하던 남자친구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2009년 2월18일 2차 시험을 보던 날에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시험장에 나갔다. 오전 6시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됐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통이 심해져 시험 시작을 눈앞에 두고 산부인과로 향했고 아이는 다음날 태어났다.

“인생이 권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생에 기권패는 없거든요. 처음 패배를 했을 때도 엄청 맞았지만 쓰러질지언정 수건을 안 던지겠다는 심정으로 버텼어요.”

 

2002년 전국여자신인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도 아쉽게 판정패했는데, 그는 “졌을 때 경험이 사법시험 준비에도 힘이 됐다. 포기하느니 실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싱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면 좋지만 반드시 이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아이를 낳은 그해 또다시 시험에 도전했다. 1차엔 무난히 합격했지만 2차에서 고배를 마셨다. 주변에서는 “안될 것 같으면 포기해라, 늦기 전에 빨리 마음을 돌리라”고 했지만 그럴수록 “아직 길을 끝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아내이자 엄마로서 시험 준비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나씨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이는 시어머니다. 지난해 2차에서 탈락한 것을 확인한 날 시어머니는 나씨를 경복궁에 데리고 갔다. 그러곤 “걱정 말고 계속 공부하라”고 했다. 그 말이 큰 힘이 됐다.

나씨의 시어머니는 인생의 대부분을 사시 뒷바라지로 보냈다. 나씨의 시아버지, 남편, 시누이도 사시 준비를 했다. 나씨의 남편을 제외한 3명은 모두 합격했다.

나씨는 “힘든 준비 기간이었지만 결혼, 공부, 양육 모두 사람이 하는 일 아니냐”며 “나중에 아이가 어떤 일을 포기하고 싶다고 할 때, 내 얘기를 하며 스스로 제한을 두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검사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복싱의 꿈도 버리지 않았다. 34살까지 선발 자격이 있는 국가대표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